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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내 가장 오래된 취미

2008/10/13 17:27, 글쓴이 mindfree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이에요"

한 때 참 많이 들었던 문장이다. 소개팅 자리에서 단골로 나왔던가? 어쨌든 취미의 사전적 정의는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하여 하는 일(네이버 국어사전)"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때로 책 읽기는 내 취미이기도 하고 때로 아니기도 하다.

국민학교 시절

책 읽기를 시작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내가 한글을 깨우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일거라 추측한다. 내가 태어나기 전 -혹은 태어날 무렵 쯤- 우리 집은 서점을 잠깐 했었다 한다. 나는 서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지만, 아무튼 서점을 그만둘 때 대부분의 책을 처분했겠지만, 일부는 처분하지 않고 집에 그대로 있었다. 이 중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 전집과 한국문학전집, 세계문학전집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아마도 부모님께서 아이들이 크면 읽으라고 남겨둔 것일 테고.

한글을 깨우친 이후로 집에 있던 동화 전집을 꽤 즐겨 읽었다. 당시만 해도 집집마다 책을 팔러 다니는 외판원이 '하루에 550원씩 한 달이면 전집이...' 같은 말로 호객을 하던 시절이었고, 전집을 구입하면 정말 얄팍하게 생긴 책꽂이를 하나 줬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전집을 한 번 구입하고 나면 삼남매가 몇날 며칠을 둘러 앉아 그 책을 꼬박 읽곤 했다. 그 때 웬만한 국내외 인물들의 위인전은 모두 읽었을 거다.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같은 무인들의 위인전은 물론이거니와 퀴리부인, 에디슨 같은 유명 학자의 위인전도 모조리.

중고등학교 시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 읽은 내용 중 꽤 많은 부분이 잘못 서술되거나, 과장되거나, 거짓이다. 태어날 때마다 어디 멀리서 도인(대개는 노승)이 와서 '하늘의 기운이...' 어쩌고 했다던 위인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으니 말이지. 중학교에 들어서면서 위인전과 동화책을 내려놓고, 세계문학전집이나 한국문학전집 같은 책을 손대기 시작했다. 물론 이 중에는 청소년 권장 도서에 포함될만한 책도 상당수 있었으나,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도 꽤 많았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일단 읽어버렸고, 물론 대개는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톨스토이, 도스트예프스키, 까뮈부터 코난 도일, 마크 트웨인까지 가리지 않았다. (당시 읽은 책 중에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누나가 구입했던 걸로 기억-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근데, 끝까지 읽었다.)

읽는 책의 범위가 좀 더 확장된 계기는 누나와 형, 그리고 친척집을 방문했던 것이다. 당시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던 <인간시장>을 형이 빌려다놓았고, 형이 자리를 잠시 비운 사이 다 읽어버렸다. 물론 외출에서 돌아온 형이 "이 책은 좀 나중에 보라"고 했었지만, 일단 맛을 본 이상(?) 멈출 내가 아니었다. 기어이 시리즈 전체를 다 읽었다. 그 때가 아마도 중1 혹은 중2 쯤 되었을 거다. 누나는 이외수, 이문열을 포함해서 당시 유행하던 로맨스 소설을 꽤 좋아했고, 그 책들도 역시 읽었다. 동시대를 보낸 웬만한 여학생들보다 내가 읽은 하이틴 로맨스 소설(왜, 그 전형적인 스토리를 가진 책 있잖아. 청순한 여자가 약간 나이 많고 매너 좋고, 잘 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만나서 사랑에 빠지고, 어쩌고 저쩌고)이 더 많을 거다. 이 책들이 내용이 비슷비슷해도 읽다보면 은근히 중독성이 있어서 만화가게에서 꽤 빌려 읽었다. (당시엔 만화가게에도 이런 책들이 다수 비치되어 있었지)

방학을 맞아 시골에 있는 고모댁에 가면 농협에서 발간하는 잡지도 읽어댔고, 오래된 샘터 같은 책도 '보이는대로' 읽었다. 무슨 내용인지와 관계 없이 일단 활자가 담긴 것이 눈에 띄면 읽어버리던 시기라고 봐야 정확할 듯 싶다. 이 때 나는 학과 과정과 관련된 참고서는 지독하게 읽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국어 참고서는 한 권을 사서 전체를 다 읽고, 다른 참고서를 구해다 읽곤 했다. 암튼 결과적으로 국어 성적은 좋더라. 매 수업 시간 쪽지시험을 쳐서 무시무시한 강도로 손바닥을 후려치던 국어 시간에도 단 한 대도 손바닥을 맞아본 기억이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가장 많이 접한 작가는 역시 이문열이다. 방학 때 대구에 있는 고모댁에 갔더니 이문열의 책이 몇 종류가 놓여져 있길래 그 집에 머무는 며칠 동안 다 읽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같은 소설은 고등학생이 읽기엔 좀 야릇한 장면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뭐 개의치 않고. (당시 개봉했던 손창민, 강수연 주연의 영화도 봤다. 누나와 같이. 그 영화는 '미성년자 관람불가'였다) 이 때부터 이문열이 그 우익 성향을 극도로 드러내기 전까지 이문열의 책은 출간되는대로, 이전에 출간된 것까지, 하여간 단편, 장편 가리지 않고 싸그리 읽어내려갔다. 한 마디로 '이문열에 미쳤던' 시기.

대학교 이후

고등학교 2학년이 넘어서면서부터 책 읽기가 조금 뜸해졌다. 아무래도 학교-학원-집을 오가는 생활이 반복되니 책을 접할 시간이 줄어들기 마련. 대학에 들어가서도 술 먹으러 다니기 바빴고, 존 그리샴의 소설 외에는 거의 읽지 않았던 시기다. 그러다 군대에 갔는데, 내가 속한 중대가 좀 특이하게 책을 많이 비치하고 있었고, 책 읽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전역할 때까지 대략 30~50권 정도 읽은 듯 하다. 이 중에 <이문열 삼국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복학을 한 이후 졸업 전까지 어떤 책을 읽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난다. 아마 이 때부터 내가 직장에 들어갈 무렵까지가 책을 가장 적게 읽었던 시기일 것이다. <태백산맥> <아리랑> 같은 책도 읽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노는 데 쓰거나 컴퓨터를 만지면서 보냈다. Html, 포토샵, 플래쉬 같은 학습서를 보기 시작한 것도 이 때 쯤이다.

직장생활

2000년 1월에 서울에 올라와서 지금까지 구입한 책은 모두 내 방에 있다. 물론 누가 집어가서 없어진 책도 몇 있긴 하지만. 대략 450권 정도 되니, 연 평균 50권 정도(450권 중 만화책이 50권 가량 된다)읽은 셈이다. 전체 수를 나누면 그렇게 되긴 하지만, 책이란 것이 한창 읽을 때와 뜸해질 때의 간격이 있어서 약간씩의 편차가 있다.

다만 학교를 졸업한 이후와 이전은 읽는 분야가 많이 다르다. 이전에 주로 문학 작품을 읽었다면, 졸업 이후에는 그 비중이 눈에 띄게 줄었다. 지금은 사실상 '닥치는대로' 읽는다. 그러나 내가 절대로 읽지 않는 책이 한 종류 있는데, 바로 주식, 부동산 투자 관련 책이다. 그러다가 바로 며칠 전에 투자 관련 책을 최초로 샀는데, '시골의사'로 유명한 박경철의 책이다. 주식 투자 좀 하려고? 아니, '안 하려고'.

책은 왜 읽나

닥치는대로 아무거나 막 읽는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최근 '통섭'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혼자 뿌듯해 하기도 했다. 흐흐. 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가까이 함으로 해서 얻는 것은 '부끄러움'이 크다. 이 부끄러움은 요즘 들어 도킨스의 책을 읽으며 더 커지고 있다. '인간'이라는 존재를 중심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깨닫는 중이다. 그런 면에서 도킨스의 책은 일부 기독교인들에게 정말 권하고 싶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있다고 믿는 그들이, 그 신이 '인간'을 특별히 더 사랑한다고 믿는, 그 걷잡을 수 없는 오만방자함과 무례함을 버려야 한다.

물론 책을 읽다보면 자주 잡생각이 든다. 한가한 주말, 침대에서 뒹굴면서도 책 한 번 펼치지 않는 때도 많다. 그럴 땐 내가 질러놓은 결과물을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 침대 한 면의 가장자리를 따라 바닥에 깔린 책 뭉텅이들. 족히 50권은 되는 그 놈들 중 읽은 책은 불과 20권이 안된다. 이 책들은 모두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한 이후 석 달간 사들인 것들이다. 그것들을 빤히 보노라면 머리 속에서 뭔가가 소리를 친다.

"읽어라! 멍하게 표지만 보고 있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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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17:27 2008/10/13 1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