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등학교 때, 아니 대학 시절까지만 하더라도 'Know-how'라는 말이 흔했다.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그것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해낼 능력을 갖추는 것. 그러더니 인터넷이라는 놈이 세상을 덮치면서 이젠 'Know-where'가 중요한 시대라고 한다. 가까이는 네이버와 Daum, 구글 같은 검색엔진이 내가 원하는 걸 찾아주는 시대가 됐으니, 이 넓고 넓은 정보의 바다에서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를 아는 것이 핵심이라는거지. 물론 이들 검색엔진이 찾아주는 정보의 질이나 정확성 문제는 묻어두자.

(위키피디아에서도 최근 '학술, 연구의 자료를 위키피디아만을 기반으로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단다. 간단히 말해 '님들하, 인터넷은 니들 숙제하라고 있는게 아니거든?'이 되겠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지식인이 이 역할을 대신 하고 있으니...)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진짜 중요한 것은 Know-how도 Know-where도 아닌, Know-Whom이 아닌가 싶다. '누구를 알고 있느냐'는 그야말로 여러 의미를 담을 수 있는데 그 말 그대로 '인맥'에 대한 것을 첫 번째로 꼽을 수 있겠다. 얼마 전에 티비 드라마를 보다보니 '금맥보다 더 중요하다는 인맥'이라는 대사가 나오던데, 사실 맞는 말이다. 이 인맥이라는 걸 '줄'로 연상해서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다양하게 알고 있다는 건 굳이 그것이 나의 '백그라운드'나 '줄'을 의미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가치가 있고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알고, 교감을 가짐으로 해서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거나 중요한 순간에 도움을 주고 받은 사례는 예나 지금이나 많다. 삼국지의 유비도 그의 관우, 장비와 더불어 제갈공명을 알았기에 그의 뜻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니까 말이지.

또 다른 관점으로는 사람을 파악하고 등용하는 것을 꼽을 수 있다. 리더는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누구를 어느 자리에, 어떤 역할을 맡기느냐에 따라 일이 실패하기도 성공하기도 한다. 가끔씩 망발을 해대시는 김영삼 전대통령도 옳은 말 하나는 하셨으니 그것이 바로 '인사가 만사'이다.

한 마디만 덧붙이자면, 나는 주위에서 '나는 사람을 잘 파악한다'고 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누군가를 몇 번 만나보지도 않고, 깊은 대화를 나눠보지도 않고서 '그 사람을 파악했다'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행위라 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는 신중히 여러 면에서 생각해서 판단하되, 그 판단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기회 즉, 그 사람이 자신을 보여줄 기회를 수 차례 제공한 뒤에야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가끔씩 '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수컷들을 보는데, 속으로는 꽤 비웃는다. '여자'가 오묘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대상을 그렇게 쉽게 일반화해버리는 그 단순함이 웃기기 때문이다.

누군가에 대해 판단을 내릴 때는 수시로 그 판단을 수정할 생각을 가져야만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 사람과 관련된 현상을 보면서 그 판단을 수정해 나가야만 한다. 나도 잘 안된다. 한 번 내린 판단을 거둬들이는 것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인데, 비록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나만의 생각이었다 하더라도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인간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나 혼자 안다 하더라도' 그걸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다.

여러 해 전에 대학 동기가 알고 지내던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대학 동기가 스님에게 어떤 여자분을 지칭하면서 '그 분이 그런 분인 줄 몰랐다'고 하니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니가 알던 그 분은 실제 그 분이 아니다. 넌 그냥 니 마음 속의 그 분을 봤을 뿐이지'

이 말을 대학 후배에게 전했더니 '말도 안된다. 그럼 오빠는 사람에 대해 판단도 안하고 선입견도 없느냐'고 항의(?)를 하더라. 스님의 말은 사람에 대해 판단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항상 '내 눈에 비친 그'를 보고 있지 않은지 되새겨 보라는 뜻이다.  대상을, 그리고 일어나는 현상을 다각도로 본다는 것은 그것의 본질과 실체를 꿰뚫어보려 노력한다는 의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내 눈을 수시로 닦아낼 필요가 있다. 먼지 가득한 안경을 쓰고 방을 보면 어떤 방도 깨끗하게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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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0 19:01 2008/01/3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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