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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의 변화, 1대1에서 다대다로.

2008/10/15 14:54, 글쓴이 mindfree
댓글이라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온라인과 함께 발전한 다른 커뮤니케이션과는 아주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메일은 1대1, 1대다의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1대1의 속성이 강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애초에 1대1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던 우편 역시 1대다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고, 이로 인해 1년이면 엄청난 분량의 광고 우편이 각 개인들에게 쏟아졌었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많이 줄었지만, 내가 미국에 잠시 머물 때만 하더라도 그곳은 여전히 끊임없이 쏟아지는 광고 우편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우편이 온라인의 발달과 함께,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메일로 넘어오면서 문제점 또한 같이 넘어왔다. 이미 이메일의 초창기부터 광고 메일은 모든 사용자에게 골치거리였고, 국내 최대 이메일 서비스 제공자였던 다음의 한메일에서 '이메일 종량제'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할만큼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물론 이 제도는 시간이 지나면서  폐지되었지만, 이런 제도가 등장했던 사실만큼은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ICQ로 알려지기 시작한 메신저 서비스는 여러 단계의 변천사를 거치긴 했지만, 여전히 강한 1대1 속성을 지닌 서비스다. 물론 여러 명의 사용자가 동시에 채팅을 할 수 있는 기능도 갖고 있지만, 이건 이미 친숙한 다수의 사용자가 한 공간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다를 바가 없다. 대화방 초청 과정에서 실수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타인이 이 대화에 끼어들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따라서 이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는 전적으로 개인들간의 사담이며, 폐쇄적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뒷담화' 수준에 머문다. 달리 말해 술자리에서 오고 가는 잡담의 범주를 넘지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들 도구와 거의 동시에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댓글이다. 댓글이 유달리 문제가 되는 것은 위에서 거론한 도구들과는 달리 1대1, 1대다, 다대다의 속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방식은 커다란 종이에 글을 적어 모두가 보는 공간에 게시하는 대자보의 속성을 갖는데, 문제는 애초에 사람들이 대자보의 속성을 갖는다고 생각했던 도구는 댓글이 아니라, 댓글이 종속되는 포스트, 혹은 기사였다는 데에 있다.

온라인 특히 인터넷에 내가 무언가를 게시하면 그 자체는 -설령 내가 원 데이터를 삭제하더라도- 인터넷에 영원히 남아, 이후의 모든 이들이 열람이 가능한 대자보로 영원히 남는다. 물론 실제 인터넷에서는 오프라인에 게시된 대자보와 동일하게 아무도 찾지 않는 구석진 공간이 존재하지만, 지금 당장 아무도 찾지 않는다 해서 앞으로도 아무도 찾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는 건 벽에 붙여진 대자보와 동일하다. 앞에서 '내가 원 데이터를 삭제하더라도' 남는다고 말한 것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검색 봇이 일단 한 번 수집을 하면 캐쉬에 남을 뿐더러, 누군가 원 데이터를 복제해서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CC Korea에서 자막 번역 작업을 한 다큐멘터리 'Steal this film2'에는 이를 두고 '손바닥에 있는 물 같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일단 손바닥에 물이 떨어지고 나면, 그것이 흐르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필연적으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속성을 가지는데, 일단 손바닥에서 흘러내려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면 이것을 다시 주워담을 방법은 없다.

애초에 대자보 아래에 붙여진 쪽지 혹은 거기에 덧붙여진 낙서 정도의 개념이었던 댓글이 지금과 같은 파괴력을 가지게 된 것은 댓글 자체의 속성이라기 보단 대자보의 속성 탓이다. 인터넷에 게시된 게시글이 누구나 접근이 가능한 것이 되면서부터 거기에 자신의 의견을 덧붙이는 댓글 역시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게 되었다. 애초에 해당 게시글을 남긴 이에게 전하는 의견이었던 댓글은 어느새 속성이 조금씩 변해 게시글을 읽는 이들에게 남기는 공개적인 게시글의 성격을 지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요소가 얽혀드는 데, 바로 이야기꺼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가 담고 있는 메시지를 좋아한다. 이야기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해 전해지기 마련인데, 이렇게 전해진 이야기를 다시 남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미디어다. 거의 본능적으로 남 얘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속성을 교묘히 이용해 발전한 것 역시 이들 미디어인데, 처음에는 일정한 범위와 규율 안에서 움직이던 것이 지금은 그 범위라는 것이 너무나 넓어서 사실상 없다고 봐도 될 지경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라면 그게 뭐든 달려들고 있는 거지.

어떤 이야기가 생명력을 지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딱 하나다. 그것을 듣고 다시 다른 사람에게 전할만한 가치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가치'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만, 역시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흥미를 끌게 하느냐'이고, 현대 사회에서 여러 사람의 공통적인 흥미를 끌만한 요소로 '연예계 가십' 이상이 없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남에게 전할 때 그것을 들은 사람이 그에 대해 관심을 가지려면 '나와 그' 모두에게 친숙한 소재일 수밖에 없고, 연예계 가십은 그에 딱 맞는 컨텐트인 셈이다.

앞서 댓글은 다른 이의 게시글에 내 의견을 덧붙이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라고 정의했다. 여기서 말하는 내 의견이란 간단하게는 '잘 읽었습니다' 정도에서 출발해, 적극적인 찬성 의견 혹은 적극적인 반대 의견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아무리 간단한 '잘 읽었습니다'의 댓글이라 하더라도, 그 말을 끄집어낼만한 요소가 반드시 해당 게시글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설령 읽고 나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이 담긴 게시글이라 해도 거기에 댓글을 남기는 적극적인 행위를 끌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데에 0.1초면 충분한 인터넷의 특성상 아주 잠깐의 시간이라도 그 공간에 머물어 '키보드를 타이핑하는' 적극적인 행위로 연결시키려면 웬만한 유인 요소로는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유인 요소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앞서 말한 연예계 가십이다.

인터넷에 남긴 게시글이 광장에 붙인 대자보의 속성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다고 했으나, 대자보든 게시글이든 '접근성의 격차'라는 것이 존재한다. 가령 지금 내가 작성하고 있는 이 포스트에 누군가 접근하려면 상당한 기회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 특정한 검색어로 검색을 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하거나, 혹은 내 글을 평소 RSS로 구독하거나, 내 글이 블로거뉴스와 같은 메타 블로그 서비스에 게시되는 그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거나. 수없이 많은 컨텐트 속에 파묻인 이 포스트에 접근하기 위해선 이러한 기회 비용을 지불해야만 가능하지만, 반대로 전혀 그렇지 않은 게시글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공간에 게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대자보 제작자들이다. 바로 전통적인 미디어, 언론을 말한다. 다양한 접근 경로를 가진 언론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기 시작하면 그에 접근하는 기회비용은 사실상 0이다. 아무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누구나 손쉽게 단 한 번의 클릭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초대형 광장의 첫 머리에 떡하니 걸린 대자보를 우연히 발견하고 클릭하는 것은 물끄러미 창 밖을 바라보다 예쁜 아가씨를 보게 되는 정도의 수고면 충분하니까 말이다.

멀리 돌아왔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손쉬운 접근성, 누구나 관심을 가질만한 컨텐트, 읽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매력을 고루 갖춘 대자보에는 '한 마디 던지고픈 욕구'가 커지기 마련이다. 1대1의 속성을 가졌던 댓글이 1대다 속성을 가진 대자보로 변하는 순간이다. 다수의 1대다 커뮤니케이션이 한 곳에 모이면 자연히 다대다 커뮤니케이션이 되고 만다. 한 마디로 말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에게 수많은 이야기를 시도하는 광장이다.

커뮤니케이션 도구의 속성은 시간이 지나면 변한다. 1대1에서 출발한 우편과 이메일은 1대다 속성을 가진 도구로 변했고, 1대1에서 출발한 댓글은 1대다, 다대다 속성을 지닌 도구로 변했다. 이렇게 도구의 속성이 변화했을 때, 우리는 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광고 우편이 쏟아지니 우편함을 폐쇄했어야 했을까? 광고 메일이 쏟아져서 실시했던 종량제는 과연 효과를 거뒀나?

도구는 혼자 변하지 않는다. 도구가 변하는 것에는 다양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고, 사람들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기 마련이다. 도구의 변한 속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이 속성을 임의로, 강제적인 방법으로 방향을 바꾸려거나 되돌리려 하는 시도는 지극히 어리석은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어리석은 결과 정도라면 감수할 수 있을지 몰라도, 예기치 못한 부작용 -더구나 지금 말하고 있는 조치는 부작용이 빤히 보인다- 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래야 할까?

댓글을 규제하기 위해 새로운 법안을 만든다는 것은 한 마디로 광고 우편 때문에 우편함을 폐쇄하겠다는 얘기와 비슷하다. 우편이 1대다의 속성에서 다대다의 속성으로 발전하지 않은 것은 그럴만한 기회와 적절한 사회적, 기술적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댓글은 사회적, 기술적 변화를 모두 거치면서 속성이 변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것이 앞으로 또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지는 여러분도, 나도 누구도 모른다. 사회적 관계와 친밀감을 향상시키기 위한 도구였던 SNS와 문자메시지가 반정부 시위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도 활용되는 것처럼 항상 도구는 의외의 방향으로 변화하며 진화한다. 앞서 언급한 도구는 모두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이며, 이들은 애초의 인간의 강력한 욕망,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만들어진 도구이다. 이 욕망을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라 부르며 보호해 온 것이 바로 민주사회의 발전상이다. 온라인 상에서 신분 증명을 받도록 하고, 그것을 추적하도록 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도구의 성격을 강제로 바꾸려 하는 것은 지금 잠깐 드러난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 더 큰 부작용을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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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5 14:54 2008/10/15 14:54